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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벌레’와 파브르의 코페르니쿠스적 충격 – 삼일로창고극장 연극

떠블유제이 2025. 7. 19. 14:47

‘이름 없는 벌레’와 파브르의 코페르니쿠스적 충격 – 삼일로창고극장 연극

 

곤충학자 파브르와 이름 없는 존재 – 삼일로창고극장 연극

“선생님, 벌레를 정의해 줄 수 있으세요?”

삼일로창고극장 무대 위, 관객들은 곤충학자 파브르에게 던져진 다소 어렵고도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벌레는 무엇인가?’ ‘인간과 벌레의 경계는 어디인가?’ 그리고 ‘이름을 붙인다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연극 《곤충학자 파브르는 모녀에게 벌레를 정의해 줄 것을 부탁받아 정의하고자 한다》(이하 '파브르와 벌레')는, 기존 무대 예술에서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정의(定義)’의 실패와 존재의 경계 문제를 서정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품입니다.

📍 삼일로창고극장 공간 및 운영 정보

  • 장소 : 서울 중구 삼일대로 428, 삼일로창고극장
  • 운영 요일/시간 : 수요일, 목요일 19:30
  • 티켓 가격 : 전석 20,000원
  • 관람 등급 : 만 13세 이상
  • 예매 : 삼일로창고극장 공식 예매처, 각종 티켓 사이트

1. 줄거리와 무대의 명료한 서사

이야기는 곤충학자이자 유명한 자연과학자인 장 앙리 파브르가 강연 중 한 모녀로부터 ‘이름 없는 벌레’를 봐 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시작됩니다. 호기심에 이끌린 파브르는, 함께 그 벌레를 찾아가지만,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광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분명 벌레처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론 인간의 육체, 행동, 언어를 갖춘 ‘경계적 존재’였습니다.

파브르는 처음에는 냉정한 과학자의 시각으로 이 존재를 관찰합니다. 해부학적 구조, 행동, 언어능력까지 과학적으로 명확히 규명하고자 노력하지요. 그러나 벌레는 어느 순간 다시 철저히 ‘벌레’의 신체와 본능으로 변해버립니다. 파브르는 계속해서 이 정체불명의 존재를 이름 붙이고 정의하려 애쓰지만, 벌레는 이를 번번이 거부하고, 오히려 “나는 규정될 수 없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집니다.

무대는 늘 경계 위에 서 있는 벌레와 파브르, 그리고 모녀(특히 실종된 아들)에 의해 시공간이 교차합니다.
벌레와 아들은 시시각각 존재를 오가며, 관객에게는 “도대체 이 존재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남게 됩니다.

2. 연극의 구조와 상징, 미장센

⦿ 벌레의 실존과 파브르의 한계

연극은 파브르라는 역사상 실제 인물―자연의 관찰자로 유명한 곤충학자―의 시선과, 현대적 관객의 인식 사이에 교묘히 배치됩니다. 학문적 정의, 해부학적 분석, 분류와 규명… 파브르의 방식은 결국 존재가 가진 유연함, 변화 가능성, 불확실성 앞에서 좌절합니다.

연극이 가장 인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정의의 불가능성"입니다.
벌레와 인간, 아들과 벌레, 경계와 중심… 이 모든 것이 뒤섞이며, 이름 붙이기(네이밍)의 한계도 함께 부각됩니다.
과학과 예술, 이성과 감정, 가족과 타자, 실종과 회복… 작품은 끊임없이 모든 것이 흐릿해지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시도합니다.

⦿ 무대미술과 배우의 신체

삼일로창고극장 특유의 미로 같은 무대는 현실과 환상, 과학과 예술, 실내와 야외, 인간과 벌레를 모두 담은 듯 복합적입니다.
벌레/아들 역 배우의 변신(physical acting)과 파브르의 사색, 그리고 모녀의 실존적 슬픔은 조명, 음악, 신체 언어를 통해 진동하는 듯 관객에게 다가옵니다.

3. 존재의 정의 – 왜 그렇게 어렵나?

이 작품에서 벌레는 단순한 곤충 그 이상입니다.
파브르는 "벌레란 무엇인가?"라는 과학적 질문으로, 끊임없이 관찰, 해석, 실험을 거듭합니다.
하지만 벌레/아들은 그 어떤 순간에도 완전하게 한 가지 존재, 한 가지 이름에 가둬지지 않습니다.

이와 함께 "이름 없는 벌레"라는 모티브는, 우리가 가끔은 본질적 정의를 너무 쉽게 내린다는 점―‘벌레=작고 하찮고 밟히는 존재’라는 편견, 경계짓기―를 날카롭게 비튼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작품 속 벌레는 "나는 당신이 규정할 수 없는 존재"라며 존재의 경계 밖으로, 정의와 해부, 이름붙이기 그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벗어나려 애씁니다.
이는 곧 인간의 정체성, 가족, 실존,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의 변화 가능성과 신비함을 강조합니다.

4. 가족, 상실, 그리고 회복에 대한 노래

이 극의 또 다른 축은 모녀의 사연입니다.
모녀는 실종된 아들의 행방을 찾아 헤매며, 벌레를 통해 아들의 부재와 상실을 기억하고 되뇌게 됩니다.
‘벌레’는 이제 모녀의 상실된 아들과 동일시되고, 때로는 되돌아온 듯 나타나는 순간도 있지만, 더 이상 예전의 아들이 아닌 타자가 되어 돌아오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연극은 “우리가 사랑했던 누군가, 어떤 존재도 다시 똑같이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쓸쓸한 진실과,
변화, 슬픔, 그럼에도 이어지는 인간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무한히 변주되는 존재의 가능성을 노래합니다.

5. 무용지용 – 쓸모없음에서 발견되는 진실

작품의 결론은, 우리가 함부로 규정짓고, 잣대를 들이대는 그 많은 ‘정의’들이 실제로는 대상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과학적 분석, 사회적 규범, 이름붙이기(네이밍)의 욕망은 결국 미완의 채 혼돈스럽게 끝나고 맙니다.
"쓸모(Useful)와 쓸모없음(Useless)", "벌레와 인간", "아들과 벌레", "정의와 변화"… 그 모든 이분법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미묘한 공간.
파브르 역시 그 경계 끝에 혼란과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얻게 된 듯합니다.

6. 무대 밖, 관객에게 남는 질문

연극이 끝나면, 관객에게도 "나는 누구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존재를 정말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남습니다.
‘정의할 수 없는 것,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상실의 상처와 변화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성장’이고 ‘성숙’이라는 통찰도 얻을 수 있죠.

🎫 예매 및 관람 꿀팁

  • 예매 : 삼일로창고극장 공식 사이트 및 각종 티켓플랫폼
  • 좌석 : 전석 20,000원, 전좌석 자유(무대와의 거리 가까움)
  • 운영시간 : 수/목 19:30 시작, 90~100분 내외
  • 관람 등급 : 만 13세 이상(청소년/성인 모두 추천)
  • 공연장 팁 :
    • 극장 내외 소규모 카페, 다양한 예술 굿즈샵도 함께 방문 추천
    • 공연 전후 인근 카페 거리 산책, 경복궁/을지로 등 서울여행 연계 추천
    • 실내외 사진촬영 제한 있으니 안내문 숙지 필수

삼일로창고극장에서 만나는 ‘파브르는 벌레를 정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곧 ‘내가 사랑하는 것, 나의 상실, 내 존재의 이름을 나는 진짜로 붙일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과감한 실험적 연출과 배우들의 인상적 신체 연기, 그리고 섬세한 미장센이 어우러지는 무대 위에서,
관객은 누구나 ‘정의하지 못하는 것 혹은 영원히 변하는 존재’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름이 없다는 것, 그 자체로 존재의 진실임을, 이번 연극은 깊이 있게 안겨 줍니다.

여름밤, 서울 심장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존재의 경계와 정의의 의미에 대해 잠시 멈춰 고민해보는 특별한 시간을 경험해보시길 추천합니다.